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? 담배 두 갑과 맥주 캔 네 개를 비닐봉지에 담던 편의점 사장님이 물었지. 우린 별다른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어. 친구는 미친 남자와의 관계를 막 정리한 참이었고 난 미친 나의 지난날들과의 관계를 막 정리하려던 참이었지. 나와 친구는 한 지역의 술을 다 마셔버린 후 이태원의 많고 많은 언덕길들중 하나에 도착했어 지금과는 무척 다른모양을 하고 있던 당시의 클럽 트랜스엔 역대 쇼걸들의 공연사진이 지저분하게 도배되어 있었지. 한두 잔을 마셨을 때쯤이였나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종업원의 말에 친구는 뭐 이따위 술집이 다 있느냐며 투덜거렸지만, 사실 우리가 클럽에 들어갔을 때의 시간이 이미 세시였어 우린 서로에게 더 마실 수 있겠냐고 물어가며 가까스로 언덕을 기어올랐지. 사실 왜 그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했는지 몰랐고 어디로 가는지조차 몰랐지만, 우린 차가운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계속 걸었어. 막다른 골목의 언덕 꼭대기에 서자 오른편으로는 이슬람 사원이 왼편으로는 작은 술집 한 곳이 눈에 띄였지. 술집 문을 열자 주인과 손님들은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그런 것을 신경쓰기엔 우린 너무도 많이 취해 있었고, 1월 새벽의 추위는 정말 매서웠어. 컨츄리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미군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백인 남자 다섯이 한 손은 마리화나를, 한 손에는 큐를 든 채 요란하게 당구를 치고 있었지 끊임없이 자신의 모든것을 소모시켜야만 했던 인연도 막상 끊어질 때엔 그런 걸까? 그때나 지금이나 멍청하기 짝이 없는 친구는 술잔을 눈앞에 두고 눈물을 글썽였지. 난 무슨 말이든 해야 했고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어 미군들 옆 테이블에서 혼자 당구를 치고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지. 저기 쟤 프랑스 남자 같지? 저기 쟤 프랑스 남자 같지? 어때 내가 쟤한테 말을 걸어서 데리고 와 볼까? 내가 저 남자한테 말을 걸어서 여기로 데리고 와 볼까? 왠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? 왠지,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? 친구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큰 소리로 웃었고 나도 함께 웃었지. 프랑스 남자와 미군들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잠시 우리를 바라보고 키득거리며 웃었어. 우리 들은 달리는 차 안에서 어슴프레 떠오르는 아침 해를 함께 보았지. 그 새벽, 만취한 친구는 두손으로 잡은 핸들에 목숨을 걸었고, 나는 우리 둘을 위한 행운에 목숨을 걸었지. 좁은 골목길을 내달리며 친구는 펫숍보이스를 반복해서 들었고 난 너무 시끄러우니 제발 음악을 꺼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잠들고 말았어. 꿈 속에서 나는 얼굴없는 신을 보았지. 꿈 속에서 나는 펫숍보이즈 틈으로 얼굴이 없는 신을 보았어. 신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 얼굴이 없는 신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어. 신이 내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할 때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어. 신이 내게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할 때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어 우리 다음번엔 트랜스에 좀 더 일찍 놀러가자. 우리 다음번엔 트랜스에 좀 더 일찍 놀러가자. 그 프랑스 남자는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지금도 당구를 치고 있을까 지금도 이태원, 그 많고 많은 언덕 위 술집들 중 하나에서 멍한 눈빛으로 당구를 치고 있을까